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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36

[시] 굴레

네가 없이 문드러져가는 추억들 사이 피어나는 꽃들 뒤늦은 개화에 속절없이 무너져 가는 나날들 네가 있어 존재했던 기억들과 네가 있어 존재했던 시간들은 네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계속 피어나는구나 가을 뒤 겨울이 올 줄 알았고 봄 뒤 여름이 올 줄 알았건만 여전히 봄만 가득한 내 세상 지독히도 다시, 다시 피어나는 것들에 찔려 상처를 입는다 봄 뒤에 봄 그리고 또다시 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혀 여름이 오길 바란다

2021.06.05

[단편] 볼륨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남들 다 이런 소리로 듣는데, 그쪽만 크게 듣고 있던 거였어요." "그래요?""네, 그러니까 약 끊지 말고 꼭 드셔야 해요. 지금은 이 볼륨이 적응이 돼서 그런 거예요. 적응된 소리로 듣기 시작하니까 정상인 줄 아는 거지만, 약 끊으면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그래, 그런가 싶었다. 남들 다 이런 정도로 소리를 듣고 있었다니. 나는 남들의 시선이나 말과 행동에 너무 큰 신경을 쓰고 있었나 보다. 적응기가 어느 정도 필요했고 나는 그 적응기를 지나고 있었다."네, 알겠습니다."언제 끊어야 할지 모르는 약을 매일 먹는다는 건 메마른 땅 위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다.병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간단한 요기거리를 샀다. 그러곤 집 근처 물길이 있는 곳에서 바람을 좀 쐬다 왔다."무서워서 그..

그냥 2021.05.01

[잡문] 자기파괴적인 사랑에 대해

'너는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너의 말투와 행동엔 사랑이 있었다' "그래, 이런 게 연애지. 맞춰가기까지가 힘든 거. 다 힘든 거 아니겠어?" "그래?" 나는 의문을 품었다. 그의 말속에는 합리화가 섞인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남들도 다 이런 연애를 하는 걸까?" "모르겠어. 근데 난 여태까지 이런 힘든 연애들을 해왔던 것 같아." "나 만나는게 힘들어?" "좋을 때도 있지."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나 왜 만나?" 나는 속절없이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런 질문들을 왜 하냐며 내 주변 친구들을 타박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 질문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니. "당연하니까. 넌 나에게 당연한 존재야. 그리고, 음... 그냥 네가 해주는 말들이나 이런 것들이 좋았어. 지금도 그렇고." 그는 완벽한 대답..

잡글 2021.03.11

210212

1 서로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하는 걸 같이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기분을 상하게 한다고 해서 우리가 나쁜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니야. 그냥 우리는 표현 방식이 다른 것일 뿐이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2 나는 나를 두고 가버리는 네 행동에 상처를 받고 너는 네 기분을 상하게 하는 내 행동에 실망을 하고 연인이라는 게 항상 서로에게 좋은 것들만 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건 서로가 너무나 잘 알지만, 난 항상 예쁘고 좋고 싶다. 그래서 잘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런 마음이 낳는 결과가 항상 좋지만은 않다. 때에 따라 다른 표현 방식이 필요한데 나는 언제나 어김없고, 여지없이 네가 좋기에 서로에게 뜸해질 때조차도 그 틈을 주지 않는다. 3 그러기 위해선 서로..

매일 2021.02.12 (2)

[잡문] 아이러니하게도

관계가 깊어갈수록 늘어가는 건 불안이었다. 사랑은 여전했다. 다만,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 수치는 이 관계가 지속될수록, 상대가 더 좋아질수록 커져만 갔다. 다른 이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이 세상에 둘만 있어도 좋을 것만 같은 망상 같은 것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 나에게 불안은 찾아왔다. 나는 상대를 위한다. 나보다도 더 상대를 위한다. 상대가 나로 하여금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추월할 때 아이러니하게, 상대와의 관계는 틀어져만 갔다. 답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답을 찾고, 혼자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날이 선 칼을 들고 서 있다. 세상엔 참 아이러니한 게 많다. 당신과 나처럼.

잡글 2021.02.07 (2)

[잡문] 사랑, 사람

1 중요한 건 그 사람에게 어떤 흠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흠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다. 2 내 생에 어느 순간에 와도 널 만났을 거야. 3 내가 너에게 하는 말들이 가벼워지지 않게, 적당히 꽉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너무 무거우면 가라앉고 너무 가벼우면 날아가버리니까 어떤 말이든 적당한 무게를 달아 띄우고, 내리는 것. 4 나에게 속삭이는 네가 꿈꾸는 나와의 미래, 아무 말 없이 하는 입맞춤과 무엇이 담겨있는지 채 가늠하지도 못하는 그런 눈을 하고서 나를 응시하는 것. 그런 것들에 불안은 눈 녹듯 사라진다. 5 "왜 넌 내가 화장하지 않은 모습이 아무렇지 않아? 왜 이렇게 익숙한 듯 행동하지?" 나에겐 그냥 화장을 한 너, 화장을 하지 않은 너. 아무렇지 않은 건 정말 아무렇지 않기 때문에, 어떤 모습..

잡글 2021.02.06

[시] 구속

그렇다. 구속이었다. 널 본 순간, 난 손과 발이 묶였다. 너에게 눈빛밖에 줄 수가 없었다. 내 눈으로 진실을 확인하려던 너는 찾고 있던 것을 얻었는지 등을 돌리고 가버렸다. 혼자 남은 나는 무얼 하라고. 다음 날, 널 만났을 때 너는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자그마한 꽃. 그것은 시들지도 피지도 않았다. 나에게 손을 내밀며 보여주던 너. 무슨 일인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꽃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꽃을 바라보고 너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저 꽃이고 그저 너였다. 해질녘이 되어 너와 손을 잡고 걸었다. 뜨겁지도 또 차갑지도 않은 너의 손은 질 듯 말 듯한 해를 잡는 듯했다. 공기가 파랗게 변하는 새벽이 될 때까지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이미 너의 손에 있던 꽃은..

2021.01.15

[잡문] 오래된 편지

긴 청바지에 까만색 코트 그리고 부끄러운 듯 흰 마스크로 가린 얼굴. 나도 까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널 만나러 갔지. 서로 얼굴 쳐다보기도 부끄러워 서로 밥만 깨작댔고, 내 소매를 잡고서 나를 끌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은근슬쩍 나에게 기대어 수줍게 걸어갔어. 한 줌 낙엽들도 날아가 버렸으니, 이젠 날려 보내야지. 우리 사이가 점점 굳어져 간다고 생각할 때쯤, 넌 아마 무뎌지고 있다고 생각했나 봐. 그런 시간이 스치는 와중에, 네가 묻더라. "나 소개받을까?" 난 네가 무슨 의도로 그걸 나에게 묻는지 알지 못했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알게 되었지. 왜냐면 넌 지난번에도 나에게 "나랑 너랑 무슨 사이야?" 라고 물었으니까 말이야. 유추하는 데는 내가 눈치가 없어서 시간이 필요했어. 그래도 난 후회..

잡글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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