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1

[시] 고해

나는 당신이 사무칩니다. 당신과 웃던 나날들과 울던 나날들이 내 심장을 쿡쿡 찔러 나를 열병 나게 합니다. 사랑이었을까요? 사랑이었으니 비 오는 날의 당신이 걱정되는 거겠죠. 사랑이었으니 비 온 뒤의 그대를 다시금 떠올리는 거겠죠.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을 그리워 한다 하여 무엇 하나 얻을 것 없지마는 비 오는 날 차가워진 오른팍 가슴에 따듯한 온기 한 점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비 온 뒤 식은 열기를 감내할 것입니다. 나는 요즘 자주 웃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내 곁에 있던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 자주 피식 댑니다. 당신도 잘 지내고 계시죠? 당신 곁의 웃고 있던 제 모습 한 번 떠올려주실까요? 제일 행복했던 순간 말하라면, 당신의 손가락을 만질 수 있었던 그 때라고..

2021.06.06

[시] 굴레

네가 없이 문드러져가는 추억들 사이 피어나는 꽃들 뒤늦은 개화에 속절없이 무너져 가는 나날들 네가 있어 존재했던 기억들과 네가 있어 존재했던 시간들은 네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계속 피어나는구나 가을 뒤 겨울이 올 줄 알았고 봄 뒤 여름이 올 줄 알았건만 여전히 봄만 가득한 내 세상 지독히도 다시, 다시 피어나는 것들에 찔려 상처를 입는다 봄 뒤에 봄 그리고 또다시 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혀 여름이 오길 바란다

2021.06.05

[시] 길

너에게로 가는 길을 놓는다 버려진 것들을 줏어 담아 튼튼하길 바라며 길을 놓는다 지나간 것들도 줏어 담아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길을 놓는다 뒤돌아 보니 쓰레기 더미였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놓았다 부수고 다시 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 악취를 풍겼다 언제까지 길을 놓아야 너에게 닿을까 싶었다 강 건너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너 그쪽으로 가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니 무엇을 쌓아 올려야 무엇을 길어 내야 네 쪽에 갈 수 있는거니 적막한 강가에 또 다시 나홀로 돌아와 앉는다 다시 길을 내야 하는 곳을 응시하며 홀로 쭈구려 앉았다 또, 저 멀리 한 번 더 멀어진 너를 본다

2021.05.01

[시] 나에게

나야, 외로우냐 너와 함께하지 못해 외로우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해 그러한 것이냐 것도 아니면 한 사람의 세상 되어본 적 없어 그러느냐 그중 어떤 것이 너를 내치든 외로워하지 말아라 그리 슬프게 울지 말아라 새벽을 태워 아침을 날려 보내지 말아라 왜냐하면 나에게 너는 내 세상이고 내 전부라 나야 너의 평생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애인이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나야 이제 더는 외로워하지 말아라 그곳에 잠시 있어도 오래 있진 말아라 나에겐 네가 있고 너에겐 내가 있다 그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나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으리, 넘실대는 파도를 향유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

2021.04.17

[시] 기도

오늘과 어제는 다르다. 오늘과 내일도 다르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내 하루의 가치가 정해지고 하루에 달린 무게가 재어진다. 그 무게로 나의 가치를 불려 나가게 된다. 어느 날엔 나의 가치가 상대방에 의해 정해지던 때가 있었다. 상대의 하루에 내 하루가 흔들리고, 상대의 기분에 내 기분이 좌우되던 때. 다른 이에게서 행복을 찾으려 할 때, 다른 이에게서 내 안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갈망할 때. 하지만, 결국 구원자는 없었다. 이제는 다른 시대를 살아내야 할 때다. 새로운 나의 시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인정한다. 여러 실수들을 반복했음에 감사한다. 자주 넘어지고 아파하고 슬퍼했음에 감사한다. 이제 나의 구원자는 나 자신이다. 올곧게 자라날 나 자신이다. 이제는 다른 하루..

2021.04.12

[시] 구속

그렇다. 구속이었다. 널 본 순간, 난 손과 발이 묶였다. 너에게 눈빛밖에 줄 수가 없었다. 내 눈으로 진실을 확인하려던 너는 찾고 있던 것을 얻었는지 등을 돌리고 가버렸다. 혼자 남은 나는 무얼 하라고. 다음 날, 널 만났을 때 너는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자그마한 꽃. 그것은 시들지도 피지도 않았다. 나에게 손을 내밀며 보여주던 너. 무슨 일인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꽃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꽃을 바라보고 너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저 꽃이고 그저 너였다. 해질녘이 되어 너와 손을 잡고 걸었다. 뜨겁지도 또 차갑지도 않은 너의 손은 질 듯 말 듯한 해를 잡는 듯했다. 공기가 파랗게 변하는 새벽이 될 때까지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이미 너의 손에 있던 꽃은..

2021.01.1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