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소고] 생각과 말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찰

새우감바스 2020. 8. 1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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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carrotcake

 

 

 말하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생각은 말이 되고 행동이 된다. 내가 머릿속에서 하는 것도 나지만, 군중 속에서의 나도 나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도 나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군중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그것 또한 내가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해봤을 때 인간은 무리 속에 있어야 객체화되는 것 같다. 극단적으로 우주 안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고 있다면 내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나'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없이는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할 수 없다. 세상에 나 혼자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느끼고 가치를 실감한다.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표출함으로써 나를 인지한다.

 

몇몇 사람들은 생각은 하지만 입 밖으로, 또는 행동으로 그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두렵기 때문에.


그럼 무엇이 두려워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주춤하는 것인가? 그 사람들은 어떤 유형이 있는가?

밑에서, 내가 직접 겪어본 케이스들을 정리해볼 것이다.



 첫 번째, 자신을 드러내려면 자신이 하는 생각들을 끄집어내 정렬해야 한다. 일단, 이 작업을 귀찮아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자신이 생각하는 치부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입 밖으로 잘못 나와서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릴까 봐 두려워한다. 이 케이스는 자신을 믿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을 다듬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생각들, 진실, 선을 실천하기에는 귀찮으니 그냥 애초에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더러운 집안을 보여주긴 쪽팔리니 말이다.



 두 번째, 남들의 비판을 듣는 것에 민감하다. 이건 좀 낫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남이 지적하는 것에 대해 고칠 태도가 준비된 사람은 비판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가끔 물살이 꺾이는 곳은 있겠지만 결국은 바다로 갈 것이다. 남이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건은, 자신에게 도움되는 방향이어야 하고 받아 들일만 한 가치가 있는 지적이어야 할 것이다. 기분 나쁜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이, 자신이 믿고 있던 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이다.

 

 세 번째, 내 생각의 옳음만이 진리라고 믿는다. 다름을 받아들이기 두렵고 싫은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며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제외하고, 자신을 그저 '옳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 그러면서 자신에게 들어오는 비판적 요소들을 무시하는 사람.

 모든 목적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믿던 것이 파괴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데도 제자리에 머무는 자는 퇴보하기 마련이다. 일단, 나만 옳다고 믿는 순간 나한테 태클을 걸어오는 상대에게는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왜? 남 생각에 대해 받아들이기 싫으니까! 나는 내 생각이 다 옳은데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이, '내 생각은 다른 거야'라고 들이밀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에게 그 사람의 생각은 틀린 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틀린 삶을 살고 있고 틀린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결국 토론이고 합의고 간에 이런 사람과 함께 하는 대화의 의미는 퇴색된다. 내 신념과 가치관을 믿고 밀고 나가는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목적을 가지는 사람에 대한 것만 빼고 말이다.

 다름에 대해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홀로 있을 수밖에 없다.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린 사람인데 어떻게 인생을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는 내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 중 하나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가 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제일 심각한 케이스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니 비판적인 것에 대한 수용은 절대적으로 하지 않고, 입만 다물고 토론에 응하지 않는 것. 발전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만이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은 가치가 없게 되고 입을 다물고 있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군중 속에 숨을 수도 있다. 욕을 먹는 것은 피하고 자신에 대한 합리화는 할 수 있으니, 비겁하고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의 반증일 수가 있겠다. 싸움은 싫어하지만, 자신은 챙기고 싶은 사람에게 딱인 생각이다.

 

 네 번째, 일부러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말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것이 설령 '틀린' 답일까 봐 두려워 남에게 동조하려 하고 남에게 묻어가려 하는 사람. 나중에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유형이다. 남을 방패 삼아 자신의 실리를 챙기는 것은 세 번째 케이스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위의 경우는 침묵하다가 방패를 삼는 경우가 생기면 그리하지만, 이 경우는 말을 할 때 남을 자신의 앞에 세우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 할 수 있겠다. 결국 모두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게끔 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일 테지만 말이다.

 

 다섯 번째,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 허세 부리는 사람이라든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TMI 하는 사람이 이 경우이다. 결점을 덮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뱉지 못하는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남과 대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남보다 내 존재를 더 부각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경우이다. 선수는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분야에 대해, 알면 알아 갈수록 자신의 부족함이 보이게 될 테니 말이다. 자랑을 쉽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그 결점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고 싶어서 상대에게 그 부분에 대해 말을 더 많이 하게 되고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남이 물어보지 않았지만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식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남에 대한 관심을 두기보다는 남에게서 관심을 끌어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관심을 목적으로 하는 관계는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관심이 끊기면 상대를 미워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즉, 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며 몸부림을 치는 것보다 남의 장점을 찾아내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쓴다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케이스들이다. 내가 봤을 땐 그리 심각하지 않은 케이스.

 

 자신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살펴보았다. 공통된 점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믿음도 없다.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있는 그대로의 나도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다는 믿음. 나를 드러내는 데에서 두려움을 품는다면, 다른 사람의 비판이 두려워 입을 막고 귀를 닫는다면 내가 사는 사회 안에 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고, 또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배려를 실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죽음은 없다. 왜냐? 죽으면 끝이니까. 죽음을 우리는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죽을 테니까 결국 우리에게 죽음은 없다는 뜻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보자. 우리 모두 두려워하는 대상에서 좀 더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보고, 나에게 좀 더 관용을 베풀어 보자.

 


 

 

 




 + 여담

 '남한산성'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병헌과 김윤석과의 대화에서 이병헌은 명분을 버리고 살고자 하는 것을 택하고 김윤석은 신념을 지켜 다른 뜻으로의 삶을 택하는 것을. 왕이 적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삶을 구걸하는 것을 부정하는 김윤석은 끝에 스스로 자결하고 만다. 살고자 하는 것만큼 신성한 뜻이 어디있냐고 하는 이병헌, 명분은 비로소 살아야 챙길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김윤석은, 신념을 지키지 못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한다. 이 둘의 팽팽한 철학적 대립에 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예전에는 김윤석의 편이었다가 지금은 이병헌의 편이다. 내 신념이 깨진 삶을 사는 것이 두려워 극복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부딪혀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지금 내 모습을 인정하며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것이 나은 것 같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삶을 살고 싶다. 무서워 떨고만 있는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때론 다른 것들에 의미를 부여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이병헌과 김윤석이 극 중 캐릭터로 논쟁을 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장면들이 간간이 나온다. 나는, 나와 반대에 서 있을지라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고 싶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생명을 우선시한다고 하는 나임에도 저런 상상을 했을 때의 나는 김윤석의 편이었다. 근래의 여러 일들을 통해 내 삶과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돌아서 가고 빗겨서 가도 방향만 맞으면 걸어가는 길에서 꽃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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