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잡문] 자기파괴적인 사랑에 대해

새우감바스 2021. 3. 1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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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carrotcake

 

'너는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너의 말투와 행동엔 사랑이 있었다'

 

"그래, 이런 게 연애지. 맞춰가기까지가 힘든 거. 다 힘든 거 아니겠어?"

"그래?"

나는 의문을 품었다. 그의 말속에는 합리화가 섞인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남들도 다 이런 연애를 하는 걸까?"

"모르겠어. 근데 난 여태까지 이런 힘든 연애들을 해왔던 것 같아."

"나 만나는게 힘들어?"

"좋을 때도 있지."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나 왜 만나?"

나는 속절없이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런 질문들을 왜 하냐며 내 주변 친구들을 타박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 질문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니.

 

"당연하니까. 넌 나에게 당연한 존재야. 그리고, 음... 그냥 네가 해주는 말들이나 이런 것들이 좋았어. 지금도 그렇고."

그는 완벽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마 그도 알고 있었겠지.

"나는 너에게 당연한 존재야? 난 네가 너무 좋은 존잰데..."

나는 중얼거렸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에게 애걸했다.나 좀 봐달라고, 나 이렇게 너 사랑하고 있다고.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만나지. 안 그래? 그리고 그런 질문들 좀 그만하면 안 되겠어? 너무 뻔한 질문들이고 진부해."

"진부한 건 그만큼 당연하다는 건데... 그 당연한 걸 넌 왜 하지 말라고 해? 할 수도 있는 거잖아."대화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는 깊고 검은 구덩이로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그래... 맞아. 네 말이 다 맞아. 근데 네 말이 좀... 하. 아니다, 됐어."

"지쳐?"

"응."

"나 왜 만나?"

다시 똑같은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면 안 되었다.

"그만하자."

"뭘 그만하자는 건데?"

"아니, 이 대화 말이야. 너 자꾸 똑같은 말 반복하고 있잖아. 네가 원하는 답을 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아니었다. 난 그냥 솔직한 대답만을 원했을 뿐. 설령, 우리 관계의 종말을 의미해도 말이다.

"응. 난 네가, 예전과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으니까..."

"그만하자, 응? 나 전화 끊을게."

그의 목소리는 많이 지쳐 보였다. 더 이상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절망적인 마음이 되어 더욱더 갈구했다. 이 대화의 끝을 말이다.

"아니... 나 좋아하기는 해?"

내뱉고 나서 정말 이젠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좋아하냐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상대와 사랑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하려고 하다니.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무시했고,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점차 연애의 종말에 만들어지는 비극의 작품이 조각되어갔다.

 

"나 끊는다."

그러고선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사소한 다툼에 날이 선다면 그건 괜찮다.큰 잘못을 저질러 일방적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도 괜찮다.허나, 사랑의 증거에 대해 논하는 것을 회피하려 드는 것은 괜찮지 않았다.

나는 끊긴 전화 속 그의 애칭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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